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까디시야 전투 (문단 편집) === 양군의 배치 === 636년 7월에 까디시야에 도착한 이슬람군은 강력한 진지를 구축하고 주변을 [[약탈]]하며 사산 왕조와 교섭을 시도했다. 총사령관 [[사아드 이븐 아비 와카스]]는 명망이 높은 인물이었지만 군사 경험은 별로 없었으므로 실제 작전은 실전 경험이 풍부한 부족 장군들의 조언이나 행동으로 이루어졌으며, 칼리파 우마르도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으며 전략적인 지령을 내렸다. 게다가 정작 까디시야 전투 당시에는 몸져 누워 있었으므로 실질적인 지휘관이라기보다는 군대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양측의 교섭은 여러 달을 끌었으나 성과는 거의 없었다[* 이 부분도 양측의 사료가 엇갈리는데, 페르시아측 사료에서는 로스탐이 이슬람군한테 돈을 주어 페르시아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고 주장한 반면 이슬람측 사료에서는 로스탐한테 "1. 페르시아인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면 공격하지 않겠다 2. 개종이 싫으면 종교세(지즈야)를 내라 3. 1과 2 모두 거부한다면 전쟁을 하자"라는 3가지 사항을 전달했고 로스탐이 3을 선택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리아 전선이 충분히 안정됐다고 판단한 칼리파는 교섭 중단을 명했고, 11월이 되어 양군은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슬람군이 강 건너에 자리잡고 있었으므로 로스탐은 먼저 도하를 시도했고, 큰 피해 없이 강을 건너 병력을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양측 모두 군대를 서로 마주보는 4개의 분견대로 나누었으며, 보병을 기병 앞에 배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